하치코 이야기
봄빛 같은 동화 ...
하늘이 내려준 자그마한 사랑의 선물 ...
일본 동경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꼽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시부야(渋谷)를 말합니다.그리고 동경 전철의 대명사
시부야 역 바로 앞에는 만남의 장소가 있는데, 그 곳에 ‘하치코’라는 개의 동상이 역을 향해 서 있습니다.
번화가 전철 역 앞에 서 있는 개 동상에는 사연이 깊습니다. 눈물 없이는 보고 들을 수 없는 기가 막힌 사연이지요.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주인이 죽은 후 10년 동안이나 시부야 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렸던 충견이 바로 ‘하치코’이기 때문입니다.
1923년 11월, 흰 눈이 소담스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아키타(秋田)현 오오다테(大館)시의 사이토우(斉藤)의 집에서 하치코는
태어났습니다. 강아지가 태어나자 아키다현청 토목과장으로 일하던 주인 사이토우는 평소 신세를 많이 졌던 동경대
농학부의 우에노(上野)교수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 이상 개를 키운 사이토우는 강아지를 쌀 섬에 넣어서 1924년 1월 14일 702호 급행열차에 실어서 동경의 우에노
역으로 보냅니다. 약 20시간 정도가 걸려서 도착한 강아지 하치코는 시부야의 우에노 교수 집에 도착했지만 몸이
상당히 약한 편이었습니다.
우에노 교수는 지금 동경대학 교양학부가 있는 고마바(駒場)의 농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하치코를 받았을 때
그는 53세였고, 그의 부인은 39세였습니다. 그는 양녀인 지루코 부부와 하녀와 정원사, 서생 등을 식구로 거느리고
있는 큰 부자였습니다.
시부야 역에서 도보로 약 5분정도 걸리는 세타가야 언덕에 살았던 우에노 교수는 아키타 개를 무척 좋아해서 5마리나
길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개들은 1살이나 2살 정도가 되면 모두 죽고 말아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고
있었던 때였고, 그런 상황에 하치코가 도착한 것입니다.
오랜 여행에 지친 탓인지 하치코 강아지는 그리 건강하지 못했는데, 우에노 교수의 극진한 간호에 힘입어 그해 장마가
끝났을 때는 아주 건강한 개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얀 색 털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강아지 하치코는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유독 애정을 느끼는 우에노 교수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서있는 이 강아지를 보고 八자라는
뜻의 '하치'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볕드는 마루에서 하치의 벼룩을 잡아주고, 첨벙첨벙 목욕도 함께하는 우에노 교수님의 하치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서
부인이 질투할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정도가 지나 성견으로 자란 하치코는 우에노 교수의 출퇴근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충견이 되었지요.
우에노 교수를 배웅하는 장소는 두 군데였는데, 하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마바의 농학부 정문 앞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부야 역이었습니다. 시부야 역은 야마노테선 역과 함께 시영전철의 종점이 있었던 관계로 하치코는 주인이
가는 방향에 따라서 배웅을 했습니다.
아키타 개가 자꾸 죽자 우에노 교수는 그 때 포인터 종류의 일종인 John과 S도 키우고 있었는데, John이 하치코를
많이 보살폈다고 합니다. 하치코가 성견이 된 후에는 세 마리의 개가 함께 교수를 배웅했는데, 하치코가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해서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그리고 바람이 부는 날도 어김없이 아침과 저녁으로 주인을 배웅하고 마중하는
그런 일을 일 년 남짓 했을 때 뜻하지 않은 비극이 하치코에게 닥칩니다.
1925년 5월 21일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치코의 배웅을 뒤로 하고 학교로 출근했던 우에노 교수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그 날 교수회의를 마친 우에노 교수는 의자에 앉아서 다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뒤로 넘어져서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주인의 죽음을 알 턱이 없었던 하치코는 농학부 교문 앞에서 밤이 늦도록 기다렸지만 우에노 교수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하치코는 주인의 냄새가 배어 있는 유품이 있는 헛간에 들어가 삼일간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 있기만 하였습니다.
4일째가 되는 25일 저녁에는 우에노 교수의 마지막 영결식이 준비되는 밤이었지만 주인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하치코는 John과 S 두 마리 개들과 함께 우에노 교수를 맞이하기 위하여 시부야 역으로 나갔습니다. 그 후로도
늘 마중을 나갔는데, 하치코 혼자인 날이 많았습니다.
갑작스런 주인의 사망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에노 교수의 부인은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서 유산 상속 등의 권리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살림을 지탱할 수 없게 되자 오카야마(岡山)에 있는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사랑하던 개들을 그냥 버릴 수 없었던 부인은 하치코와 John을 옷감장사를 하는 친척인 호리코시에게
맡겼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가기 전에 시간이 나면 하치코를 보러 갔는데, 쇠줄에 묶어놓고 먹이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옷감을 사러 온 손님을 부인으로 착각한 하치코는 그 집을 나와 버립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갈 곳이 없어진 하치코는 부인에 의해 아사쿠사의 친척에게 맡겨졌으나 하치코를 질투하던 이웃들과
사이가 나빠져서 결국 오래 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부야로 돌아온 하치코는 우에노 교수의 양녀이며 상속자인 지루코의 집에 맡겨졌으나 이전과 같은 발랄함도
건강함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교수의 양녀가 하치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에노 교수 외에는
그의 슬픔을 달래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 집에서 그럭저럭 지내던 하치코는 1927년 가을에 또 다른 사람의 집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그 곳은 교수의
정원사 일을 했던 고바야시의 집이었습니다. 원래의 주인을 잃어버린 슬픔과 그리움으로 인해 하치코는
어디에 가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치코는 시부야 역으로 교수를 마중 나가는 일을 거르지 않았는데, 그 집에서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해버린 하치코는 주인 없는 개가 되어서 들개 포획자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시부야역의
노점상들에게는 손님을 방해한다고 구박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마중하던 하치코의 행동은 어느덧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신문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신문 기자들이 하치코의 사연을 전하면서 한쪽 귀가 늘어진 것으로 보아 잡종이라고
한 것이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치코의 이런 사연은 일본개 보존협회를 조직했던 사이토우(斉藤)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는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에 하치코의 사연을 써서 기고하였고 동상 건립을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상 건립 모금에 동참을 했는데, 이 사연을 전해 들은 미국의 어린아이들까지 성금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1934년 3월 10일 오후5시부터 시작된 하치코 동상 건립창립회의는 3,000명이 넘은 사람들이 몰려서 1,2,3층을 메우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동상건립은 순조롭게 추진되어 시부야 역을 바라보는 동상을
세우기로 하였고, 발기인인 사이토우, 동상을 제작한 안도우, 시부야 역장, 우에노 교수의 미망인인 등이 참석한 동상
건립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동상이 세워진 뒤에도 하치코는 주인을 마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유랑견이 되어 떠돌던 하치코는 1935년 3월 8일
오전6시 경에 죽은 시체로 발견되며 13살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치코가 죽은 자리는 평상시 잘 가지 않았던 역의 반대쪽으로 역에서 한 참 떨어진 골목길 옆이었습니다. 유랑견이
되면서 하치코는 개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휘라리라는 병에 걸렸는데, 병균이 심장에 이르면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진단되었습니다.
하치코의 죽음이 알려지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물려 들었는데, 우에노 교수의 미망인
역시 참석하였습니다. 여러 상장을 걸기도 하면서 사람의 장례처럼 치러진 하치코의 뼈는 화장되어 자신의 주인인
우에노 교수 무덤에 함께 묻혔습니다. 한편, 하치코의 시체는 우에노 과학 박물관에 기증되어 박제로 만들어져 영원한
모습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치코 이야기는 몇 권의 책으로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로도 세인들 앞에 선 보였습니다.
그 중 가장 알려진 것은 2009년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하치코 이야기 ‘Hachiko, A Dog’s Stor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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